창밖에는 가늘고 긴 빗줄기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식어가는 커피 두 잔이 놓여 있었고, 대화는 마치 그 커피의 표면처럼 고요하지만 어딘가 불안정한 파문을 그리며 이어지고 있었다.
"10퍼센트입니다."
소장이 말했다. 그는 깍지 낀 손을 테이블 위에 올리며 나를 응시했다.
"10퍼센트를 포기한다는 것. 그건 보통 사람의 감각으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결과는 이미 나와 있어요. 해제 행위가 일어났다는 사실 말이죠."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해결되지 않은 수수께끼를 대하는 탐정의 건조한 의심이 묻어 있었다.
"소장님,"
나는 수첩을 펼치며 물었다.
"올해 서울 아파트 매수 계약 중 해제 비율이 7.4퍼센트, 그러니까 역대 최고치라고 하더군요. 이 계약 해제가 늘어난다는 건, 단순히 거래가 줄어든다는 신호일까요? 아니면 시장 내부에서 뭔가 우리가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일까요?"
소장은 잠시 창밖을 내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글쎄요. 원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건 계절이 바뀌는 것과 비슷합니다. 상승장에서 하락장, 혹은 침체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현상이죠."
그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보이지 않는 그래프를 그렸다.
"상승장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집값이 오를 거라 기대하고 매수 계약을 맺습니다. 계약을 하고 잔금을 치르기까지 보통 서너 달, 길게는 여섯 달이라는 공백이 생기죠. 그 사이에 세상이 뒤집히는 겁니다. 침체가 찾아오는 거죠. 하지만 시장이 자연스럽게 흐를 때는 이런 급격한 해제는 잘 일어나지 않아요. 변화는 서서히 스며드니까요.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어떤 거대한 변수가 개입했다는 뜻이죠."
"정부의 규제 같은 것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규제라는 건 일종의 강제적인 제동 장치니까요."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규제가 강력하게 들어오면 시장은 갑자기 얼어붙습니다. 매수인 입장에서는 당황스럽죠. 오를 줄 알았는데, 규제 때문에 갑자기 침체가 시작된 겁니다. 그때 고민이 시작되는 거예요. '이게 단순한 침체가 아니라 하락장의 시작인가?' 만약 그렇다면, 계약금 10퍼센트를 날리더라도 지금 멈추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마치 그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듯이.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10퍼센트입니다. 서울 아파트라면 적어도 15억 원은 하겠죠. 그렇다면 계약금만 1억 5천만 원입니다. 그 돈을 허공에 날리는 걸 확정 짓는 행위예요. 시장이 앞으로 10퍼센트 넘게 폭락할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가능한 결정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리 불안해도 1억 5천만 원을 포기하는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정책 발표 이후에 해제율이 급등했다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규제가 나오면 오히려 집값이 오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요? 그런데도 계약이 해지되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인데요."
"그건 일종의 집단적 착각입니다."
소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생긴 학습 효과죠. 원래 규제는 집값을 떨어뜨리기 위해 하는 겁니다. 실제 거래 당사자들은 규제가 나오면 하락의 공포를 느낍니다. 하지만 거래를 하지 않는 구경꾼들은 '규제해도 오르더라'는 지난 기억만 되새김질할 뿐이죠. 어쨌든, 규제 직후의 공포 때문에 일부 계약 해제가 일어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의 수치는 과합니다. 단순히 공포심 때문에 내 돈 1억 5천을 포기한다? 그건 인간의 보편적 경제 심리에 어긋나요. 그래서 우리는 다른 가능성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다른 가능성이라면?"
"일각에서 제기되는 '가격 띄우기용 허위 거래' 말입니다."
그 단어가 테이블 위에 떨어지자 공기의 무게가 달라진 듯했다. 조작된 거래. 통정 거래.
"생각해보세요. 10퍼센트를 포기하는 게 말이 안 된다면, 애초에 포기할 10퍼센트가 없었다면 어떨까요? 손해가 없다면 이 모든 기이한 행위가 설명이 됩니다. 즉, 이 거래들이 조작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죠."
"하지만 소장님,"
내가 반문했다.
"호가를 올리기 위해 허위 거래를 한다 해도, 신고를 하면 기록이 남고 리스크가 생기지 않습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할까요?"
"그러니까요. 저도 그들의 통장을 열어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소장은 답답하다는 듯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
"만약 조작 거래라면, 손해를 보는 구조여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계약서는 썼지만, 실제 돈은 오가지 않았을 가능성. 과장해서 말하자면, 계약금 10퍼센트를 주고받은 척만 하고 신고를 해버리는 거죠. 그게 가능하다면 리스크 없이 가격만 띄울 수 있으니까요."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정부가 이번에 부동산 단속반을 만든다고 하더군요. 국세청과 금융권까지 포함된 전담 팀이라니 기대는 해봅니다만, 아쉬움이 큽니다. 진작 했어야 할 일이었어요. 핵심은 간단합니다. 돈이 정말로 오갔느냐. 통장 내역만 확인하면 실거래인지, 쇼인지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는 이 부분을 너무 소홀히 다뤘어요."
소장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이건 시장에 치명적인 독을 풉니다. 가령, 15억 원짜리 아파트가 있다고 칩시다. 누군가 20억 원에 허위 거래를 신고해요. 사람들은 그 숫자를 봅니다. '아, 이제 시세가 20억이구나.' 그 가짜 숫자가 닻(Anchor)이 되어버리는 거죠. 나중에 그 거래가 취소되어도,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엔 20억이라는 숫자가 각인되어 있어요. 그 잔상이 또 다른 20억 거래를 만들고, 25억 거래를 만듭니다. 유령이 실체를 만들어내는 셈이죠."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빗줄기는 여전히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도시의 아파트들은 저마다의 가격표를 단 채 묵묵히 서 있을 터였다.
"2021년부터 수년간, 이런 현상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없던, 아주 기묘하고도 일반화된 현상이죠."
소장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의심은 가득한데, 증거는 통장 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공인중개사가 낀 상태에서 어떻게 돈이 오가지 않는 거래가 가능했는지, 그 디테일한 수법은 알 수 없지만 현실화되고 있는 건 분명해요. 우리는 그저 의심의 안개 속에 서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보이지 않는 손들이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남은 커피를 비웠다.
"결국 정부가 감시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지 지켜보는 수밖에요. 10퍼센트라는 거금을 포기하는 미스터리 뒤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언젠가는 드러나겠지요."
인터뷰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나는 녹음기를 껐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멈추자, 다시 빗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1억 5천만 원을 포기하는 사람, 혹은 포기한 척하는 유령들의 이야기가 빗물처럼 도시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