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부서진 조각들의 보고서

어느 겨울밤, 전파를 타고 흘러온 지구 반대편의 소음들에 관하여

1. 국경의 포화, 깨어진 유리잔 같은 평화

10월의 휴전은 얇은 유리잔 같았다. 그것이 깨지는 데는 그리 큰 힘이 필요하지 않았고, 결국 예상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 그곳에서 다시 포성이 들려왔다.

현지의 통신원 김 씨의 목소리는 전화기 너머로 건조하게 갈라져 있었다. 앙코르와트에서 불과 90km 떨어진 피란민 캠프 인근을 태국군 전투기가 폭격했다고 그는 전했다. 사람들은 짐을 쌌고, 더 안전하다고 믿어지는, 그러나 사실 어디에도 안전이란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50만 명. 숫자로 말하면 덤덤하지만, 그 하나하나는 50만 개의 불안과 50만 개의 배고픔이었다.

12월 8일, 캄보디아 국경에는 F-16 전투기가 떨어뜨린 포탄이 비처럼 내렸다. 태국군은 마치 오래된 원한을 갚으려는 듯 맹렬했다. 캄보디아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다연장 로켓포가 태국 국경을 향해 불을 뿜었다. 시작은 사소했다. 12월 7일, 국경 일대의 소규모 총격전. 담배 한 개비를 나눠 피우다가 주먹다짐으로 번지듯, 교전은 순식간에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

중장갑차가 국경 검문소까지 밀고 들어왔다. 주민들은 하수구 속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하지만 거센 폭격 앞에서 하수구는 그저 젖은 무덤에 불과했다. 마을 전체가 폐허로 변했다. 흙먼지가 가라앉은 자리에는 부서진 집과 깨진 독, 그리고 더 이상 주인을 찾지 못하는 신발들이 뒹굴고 있었다.

양국의 평화 협정은 종이 조각보다 가벼웠다. 태국 군인이 지뢰를 밟아 다치자, 태국은 휴전 이행 중단을 선언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SNS에서는 서로를 비하하고 모욕하는 영상들이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다. 훈 마넷 총리는 미국의 정보기관에 검증을 요청했지만, 태국 총리는 대화를 거부했다. 대신 카지노 범죄 단지를 드론으로 타격하고, 연료 반입을 차단했다. "네가 먼저 멈추면 나도 멈추겠다"는 말은, "나는 멈출 생각이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고통은 오롯이 대피소에 쭈그리고 앉은 평범한 사람들의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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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잠들지 않는 곰들의 겨울

일본에서는 올해를 상징하는 한자로 '곰(熊)'이 선정될지도 모른다는 농담이 돌았다. 2025년의 겨울은 이상했다. 눈은 내렸지만, 공기에는 기묘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아키타현의 스키장. 하얀 설원 위로 검은 형체가 나타났다. 보드를 즐기던 남성의 앞으로 곰이 지나갔다. 12월, 곰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그들은 잠들지 않았다. 아니, 잠들 수 없었다.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곰들의 생체 리듬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김민정 PD가 찾아간 아키타현의 마을은 고요했다. 사흘 전 곰이 나타났다는 곳. 개와 산책하던 시민은 곰을 보고 뒤돌아 뛰어야 했다. 철물점에는 곰 퇴치용 스프레이와 방울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어 있었다. 매운 고추 냄새가 나는 스프레이. 그것이 인간이 준비한 최선의 방어책이었다.

65년간 사냥을 해온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야." 산간 지역에는 눈이 쌓였지만, 곰들은 여전히 깨어 있었다. 12월에만 250건에 달하는 목격담. 산속에는 사냥꾼들이 줄어들었고, 마을은 비어갔다. 인구 감소로 버려진 땅은 자연스럽게 곰들의 영토가 되었다. 멧돼지도, 사슴도, 곰도, 인간이 물러난 자리를 채우며 두 배로 늘어났다.

도토리 흉작 때문만은 아니었다. 너무 따뜻한 겨울 탓이었다. 곰들은 배가 고팠고, 민가의 감나무와 닭장은 손쉬운 식당이었다. 지진 때문이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전문가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지구가 더워진 탓이라고. 곰들은 이제 인간의 영역과 야생의 경계를 지우고 있었다. 인간은 곰 보험을 만들고, 드론을 띄우고, 마을과 숲 사이에 완충 지대를 그으려 애썼다. 하지만 잠들지 못한 곰의 거친 숨소리는 여전히 어두운 숲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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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철제 상자 속의 삶, 그리고 타인의 도시

도쿄로 향하는 길목, 나리타 공항에서 차로 10분 거리. 그곳에는 40여 개의 컨테이너가 묘비처럼 줄지어 있었다. '컨테이너 호텔'. 1인용 객실은 비즈니스 호텔의 절반 가격이었다. 4만 원. 그 돈이면 철제 상자 안에서 하룻밤을 누일 수 있었다.

그곳은 묘하게 아늑해 보였다. 냉난방도 되고, 샤워도 할 수 있다. 유사시에는 20분 만에 통째로 이동할 수도 있다고 했다. 유목민의 텐트가 강철로 진화한 형태일까. 가성비를 쫓는 여행자들은 튼튼한 다리와 약간의 폐소공포증만 극복하면 되었다. 더 가난한 이들은 인터넷 카페의 야간 정액제 좌석에 몸을 구겨 넣었다. 의자는 침대가 되고, 모니터 불빛은 달빛을 대신했다.

반면, 도쿄의 하늘은 점점 더 비싸지고 있었다. 신축 맨션의 가격은 천장을 뚫을 기세였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자 해외의 자본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에게 도쿄의 아파트는 살기 위한 집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한 안전한 자산, 즉 포트폴리오의 일부였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외국인 집주인이 전기료를 내지 않아 멘션 전체의 전기가 끊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엘리베이터는 멈췄고, 복도는 암흑에 잠겼다. 밖의 도로 가로등이 더 밝았다. 집주인은 몰래 민박을 운영하며 법을 어겼고, 수십 년을 살아온 세입자들은 쫓겨나듯 터전을 떠났다. 누군가의 투자가 누군가에게는 실존적 위협이 되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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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경을 넘는 장바구니

튀르키예 사람들은 이제 장을 보기 위해 여권을 챙겼다. 그들은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그리스로 향했다. 그곳의 마트 주차장은 튀르키예 번호판을 단 차들로 가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조국의 물가가 미쳐 날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3년 전보다 가격이 다섯 배나 올랐다. 100리라였던 것이 500리라가 되었다. 리라화는 마치 뜨거운 아스팔트 위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4년 전 1달러에 7리라였던 환율은 이제 42리라가 넘었다.

통신원이 3년 전과 똑같은 물건을 샀을 때, 영수증에 찍힌 숫자는 비현실적이었다. 서민들의 음식인 케밥 하나에 290리라. 월세는 최저임금을 훌쩍 넘어섰다. 집주인과 세입자는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고 차에 불을 질렀다.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다.

에르도안 정부의 저금리 고집이 낳은 비극이었다. 뒤늦게 금리를 50%까지 올렸지만, 한번 풀린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은 다시 병 속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중앙은행 총재가 다섯 번이나 바뀌는 나라. 시장은 신뢰를 잃었다. 아이들은 학교 대신 일터로 내몰렸다. 700만 명의 빈곤 아동. 그들의 텅 빈 도시락통 속에는 절망만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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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총을 들지 않으려는 아이들

독일의 겨울바람은 찼다. 베를린 거리에는 수천 명의 청년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우리는 당신들의 전쟁을 위해 죽지 않는다"라고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독일 연방의회가 징병제 부활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내년부터 18세 남성들에게 군 복무 의사를 묻는 설문조사를 강제하고, 신체검사를 의무화한다는 법안. 정부는 '자발적 입대'를 유도한다고 말하지만, 청년들은 그것이 '강제 징집'의 전주곡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독일에게 '강한 군대'를 요구했다. 2차 대전의 전범국이라는 족쇄를 풀고 재무장을 하려는 움직임. 하지만 청년들에게 그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메르츠 총리, 당신이 직접 싸우러 가라." 시위대의 외침은 날카로웠다.

기성세대의 68%는 징병제에 찬성했지만, 당사자인 청년층의 찬성률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취업도 힘들고, 연금도 불안한 세대에게 이제는 총까지 쥐어주려 한다. 그들은 국방부 청사 앞에서 다시 모이기로 약속했다. 봄이 오면, 그들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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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위클리 Pick: 나이스 샷의 공허한 울림

백악관의 크리스마스 파티. 화려한 조명 아래서 가장 뜨거운 주제는 '골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골프를 사랑했다. 아니, 사랑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했다. 그것은 집착에 가까웠다.

"나는 오바마처럼 골프 칠 시간이 없다. 일하겠다." 2016년의 그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2025년의 그는 4일에 한 번꼴로 필드에 나갔다. 셧다운으로 공무원들이 월급을 걱정할 때도, 관세 폭탄을 던질 때도 그는 클럽을 휘둘렀다. 올해만 80여 회.

비용은 천문학적이었다. 임기 말까지 예상되는 골프 비용은 3억 달러. 우리 돈으로 4,400억 원. 오바마가 8년 동안 쓴 돈보다 훨씬 많았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경호 차량과 전용기가 떴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그가 소유한 골프장, 즉 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세금이 기업의 수익으로 치환되는 마법.

민주당은 그 돈이면 수만 명의 가난한 이들을 치료할 수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지지자들 앞에서 "임금은 올랐고 물가는 내렸다"고 자화자찬했다. 소비자 물가지수 2.7%. 숫자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셧다운으로 데이터 수집이 멈췄고 추수감사절 할인이 반영된 왜곡된 수치일 뿐이라는 의심은 지울 수 없었다.

그린 위에서 "나이스 샷"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지구 반대편에서는 포탄이 터지고, 곰이 마을을 배회하고, 사람들은 빵을 사기 위해 국경을 넘고 있었다. 세상은 그렇게 부조리한 균형을 유지하며 굴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