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이 없는
거리의 오후

옳고 그름이라는 환상에 대하여

지은이 : AI

원작 : 법륜스님 즉문즉설

1. 빗나간 계절의 질문

마이크를 쥔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왔다. 강당의 공기는 조금 건조했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내뿜는 숨소리가 낮은 웅웅거림으로 섞여 천장 근처를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정토회라는 곳에 발을 들인 지 3년째 되는 전법 회원이다. 3년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고양이가 성묘가 되어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달은 듯한 눈빛을 갖게 되기까지의 시간 정도랄까.

불교 공부는 꽤 재미있었다. 마치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내는 기분, 혹은 오래된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고요한 쾌감이 있었다. 하지만 단 하나,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나를 괴롭히는 명제가 있었다.

'옳고 그름이 없다.'

스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이 공부가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이 없다'는 말 앞에만 서면 가슴속 어딘가가 꽉 막힌 듯 답답해집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준비해 온 논리를 펼쳤다.

"만약 옳고 그름이 없다면, 불교의 그 엄격한 계율은 도대체 어떻게 정해진 겁니까? 그리고 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법을 집행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일은 또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불교는 현대 사회와는 톱니바퀴가 맞지 않는, 낡은 시계태엽 같은 이론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질문은 내 입을 떠나 허공을 가르고 스님에게 가닿았다. 스님은 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바람 한 점 없는 호수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자기의 질문은 이해가 되네. 하지만 그 전제는 조금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아."

스님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다는 말, 그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어. 오히려 과거에는 그 말이 맞지 않았겠지만, 현대에는 더 잘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스님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과거를 생각해 봐. 유교면 유교, 조선이면 조선. 단 하나의 가치관만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에는 '옳고 그름이 본래 없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 하지만 지금은 어때? 기독교와 불교가 섞여 살고,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이웃하며,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해. 우리는 나라마다, 종교마다, 문화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다는 걸 매일 목격하고 있어."

그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어. '아, 저 나라에서는 저렇게 정해놓고 옳다고 하는구나', '이 종교에서는 이게 진리라고 하는구나'. 본래는 없지만, 각자의 울타리 안에서 정해놓은 약속일 뿐이라는 걸 이해하면 모든 게 명쾌해지지."

나는 머릿속으로 유교 사회의 제사를 떠올렸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천하의 불효였던 시절과, 제사를 지내고 싶으면 지내고 말면 마는 지금의 풍경을. 확실히 현대 사회는 '절대적 옳음'의 힘이 빠진 상태였다.

2. 부러진 다리와 상대적 세계

하지만 나의 질문은 사회학적인 고찰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개인적이고, 내밀하며, 아픈 곳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나는 다시 마이크를 고쳐 쥐었다.

"스님, 머리로는 이해합니다. 길고 짧은 것이 상대적이고, 선악이 상대적이라는 것. 하지만..."

목소리가 조금 떨렸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억울하게 피해를 당했을 때도 그저 견해 차이라고만 해야 합니까? 예를 들어, 누군가 제 다리를 부러뜨려서 평생 걷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칩시다. 그래도 저는 그 사람을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건가요? 그 사람을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답답해서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렇게 말하지. 짐승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건 괜찮고,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리면 안 된다. 이것도 사실은 '사람'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정한 상대적인 기준이야. 범위를 좁혀볼까? 옛날엔 우리 편 다리는 안 되지만 적군의 다리는 부러뜨려도 된다고 했어. 양반은 괜찮지만, 말 안 듣는 종놈의 다리는 부러뜨려도 된다고 했지. 결국, 옳고 그름은 정하기 나름이라는 거야."

스님의 말은 냉정하게 들릴 정도로 논리적이었다.

"불교조차도 절대적 가치는 아니야. 상대적인 세상이지. 다만 불교는 그 울타리를 최대한 넓혀서 보편성을 가지려 노력하는 쪽이지. '살인하지 말라' 대신 '살생하지 말라'고 하여 생태계까지 포함하는 것처럼."

스님은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서 우리는 보편적으로 다섯 가지를 중요시해. 첫째, 내 목적을 위해 폭력을 쓰지 말라. 둘째, 남의 생존에 필요한 물건을 뺏지 말라. 셋째, 내가 좋다고 해서 상대가 싫다는데 강제로 성적인 접촉을 하거나 괴롭히지 말라. 넷째, 말로 남을 해치지 말라. 다섯째, 술에 취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

그것은 5계였다.

"이것들은 절대적인 진리라기보다는,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야. 보편적인 약속이지. 과거에는 주인이 종을 때리는 게 주인의 권리였고, 가장이 가족을 때리는 게 사랑의 매였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는 폭력을 멈추는 방향으로, 더 보편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그렇다면..."

내가 끼어들 틈도 없이 스님은 핵심을 찔렀다.

"신호등이 본래부터 있었나? 아니지. 우리가 필요해서 만든 거야. 빨간 불에 건너지 말자는 건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약속이야. 하지만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해. 어기면 벌칙을 받지. 그렇다고 빨간 불에 건너는 행위 자체가 우주적인 죄악은 아니야. 응급환자를 태운 구급차는 빨간 불에도 달려야 하니까."

3. 오래된 상처와 두 번째 화살

나는 마침내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진짜 질문을 꺼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내가 겪었던, 차마 입 밖으로 내기 힘들었던 어두운 기억이었다.

"저는 아주 어릴 때... 힘든 일을 겪었습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힘이 없었고, 말할 수도 없었어요. 평생을 그 억울함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옳고 그름이 없다고 하면, 저에게 가해를 한 그 사람이 면죄부를 받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한 짓이 나쁜 게 아니었네'라고 합리화할까 봐, 그리고 피해자인 저는 억울해할 수도 없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스님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 속에 단단한 심지가 있었다.

"스님 말씀을 듣고 '더 이상 손해 보지 않는 게 이익이다'라는 말에 위로를 받았지만, 여전히 억울함이 올라옵니다. 옳고 그름이 없다는 말이 저에게는 너무나 억울한 법문처럼 들립니다."

스님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옳고 그름이 본래 없다는 건, 자연 상태에서는 없다는 뜻이야. 하지만 사람이 모여 살면서 약속을 만들었지. 현실에서는 네 말이 맞아. 가해자는 약속을 어긴 사람이고, 벌을 받아야 해."

"하지만,"

스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내가 억울하고 분해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고통이 전달될까? 아니야. 그 사람은 잘 먹고 잘 자고 있을지도 몰라. 분노는 오직 나 자신만을 태울 뿐이야. 그것은 과거의 사건이 쏘아 올린 첫 번째 화살에 이어, 내가 나 자신에게 쏘는 두 번째, 세 번째 화살과 같아."

나는 멍하니 스님을 바라보았다.

"그 사건은 이미 지나갔어. 10년, 20년 전의 일이야. 그런데 너는 그 기억을 붙들고 오늘날까지 너 자신을 괴롭히고 있어. 그건 그 사람과는 아무 상관없는, 온전히 너의 문제야. 복수심으로 괴로워하는 건 수행이 아니야."

"그럼 그냥 잊으라는 말씀입니까?"

"아니."

스님이 단호하게 말했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면 행동해야지. 그건 복수가 아니라 정의의 실현이야. 다른 사람이 똑같은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고발하고, 알리는 것. 하지만 거기엔 대가가 따르지. 비난을 받을 수도,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도 있어. 독립운동가가 목숨을 걸듯이, 정의를 실현하려면 나도 손해를 감수해야 해."

스님은 가볍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런데 대부분은 정의 실현은 안 하고, 방구석에서 혼자 괴로워만 해. 이불 뒤집어쓰고 울기만 해. 그건 아무런 해결책이 안 돼. 억울하면 송곳이라도 품고 다니다가 찔러버리든지, 아니면 널리 알려서 매장을 시키든지, 그에 따른 처벌을 감수하고 행동을 하라는 거야. 하지만 상대를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마음으로 내 삶을 갉아먹지는 마라. 그건 너를 위해서야."

4. 에필로그

강당을 나서는 길, 밤공기가 차가웠다.

'옳고 그름은 본래 없다.'

그 말은 이제 차가운 칼날이 아니라, 나를 옥죄던 쇠사슬을 끊어주는 열쇠처럼 느껴졌다. 그 놈이 옳아서가 아니다. 그저 세상이 정한 약속을 어긴 자일 뿐이고, 나는 그 기억에 묶여 내 인생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신호등이 없는 거리라도, 우리는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며 걷는다. 때로는 부딪혀 넘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넘어진 자리에서 평생을 울고 있을 필요는 없다. 털고 일어나 걷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온전한 복수이자, 정의였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음이, 놀라울 정도로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