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천장이 찢어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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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강의실에는 여전히 묵직하고 습한 공기가 감돌고 있다. 서울대, 연대, 고대. 우리는 그 학벌이라는 낡은 명찰을 가슴에 달기 위해, 혹은 자식에게 달아주기 위해 맹목적인 열정을 쏟아붓는다. 그것은 마치 끝나지 않는 여름의 매미 소리처럼 지독하고 끈질긴 사회적 합의다. 하지만 그 소음 속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명찰이 없다는 이유로 배제된 이들의 침묵, 그 명찰을 얻기 위해 책상 위에서 시들어간 젊음들. 그 결과 이 나라의 창의성은 두꺼운 콘크리트 벽 아래 억눌려 있다.

그런데 저 멀리서, 기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아주 거대하고, 소리 없는 태풍이다. 바로 AI라는 존재다.

사람들은 AI가 등장하면 육체노동자들의 일자리부터 로봇 팔로 대체될 것이라 믿었다. 일종의 오만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정반대였다. AI는 사무직의 책상부터 집어삼켰다. 변호사, 회계사 같은 전문직의 견고한 성벽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 전문직 뒤에 숨어 있던 ‘학벌’이라는 그림자는 과연 무사할까? 라이선스라는 방패막이라도 있는 전문직과 달리, 학벌은 그저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 10초면 AI가 내놓을 답을 얻기 위해 4년이라는 시간과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대학 교육. 그것은 이제 낡은 레코드판처럼 튀고 반복될 뿐이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그 거대한 테크 기업들은 이미 냄새를 맡았다. 그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냥꾼들처럼 학벌 파괴라는 실험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칼을 빼 든 건 팔란티어였다. 그들은 마치 선전포고를 하듯 채용 공고를 내걸었다.

"College is broken
(대학은 고장 났다)."

그들은 ‘실력주의 펠로십’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며, 대학에 다니는 사람은 지원조차 하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대학 졸업장은 따로 뽑을 테니,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거나 들어가지 않은 이들 중 야생의 눈빛을 가진 인재를 데려오겠다는 것이다. 버려지는 원석을 줍겠다는 해안(慧眼)이다.

이런 흐름은 팔란티어만이 아니다. 구글은 전공자를 배제한 채용 프로그램 ‘어프렌티스’를 운영하며 "전공자는 오지 마라, 우리는 파괴적인 이단아를 원한다"고 속삭인다. IBM은 ‘뉴칼라’라는 기치를 내걸고 학위보다 숙련도를 따진다. 아마존은 한술 더 떠 검정고시 출신인 GED 소지자를 우대한다. 왜냐고? 명문대 졸업생들은 시스템에 순응하지만, 길바닥에서 구른 이들은 시스템을 파괴하고 혁신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편견을 부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독학자와 부트캠프 수료생을 찾는다.

빅테크들이 갑자기 자선사업가가 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철저히 실용적이다. 과거에는 대학 간판이 곧 성실함과 지능의 보증수표였다. 이른바 시그널링 효과다. 하지만 이제는 AI가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고, 지원자의 논리를 분석하며, 깃허브(GitHub)에 남겨진 디지털 발자국을 추적해 진짜 실력을 감별해 낸다. 학벌이라는 낡은 필터가 없어도 진짜 금을 골라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것이다.

이 혁신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피터 틸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이자 투자의 귀재인 그는 "대학은 창의성을 지연시키는 대기실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틸 펠로우십을 만들어 대학을 중퇴한 젊은이들에게 10만 달러를 쥐여주며 창업을 독려했다. 그 결과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 같은 괴물들이 탄생했다. 그는 강의실의 따분한 이론 대신, 세상과 부딪히며 깨지는 경험이 진짜 혁신을 만든다고 믿었다.

경제학적으로도 대학의 가치는 의심받아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마이크 스펜스는 대학 교육이 지식을 쌓는 곳이 아니라, 그저 "나는 지루한 일을 오래 견딜 수 있는 엉덩이 무거운 사람입니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필터링 장치일 뿐이라고 냉소했다. AI가 등장하기 전에는 그래도 20% 정도는 기술 습득 효과가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 그마저도 10초 만에 답을 내놓는 AI 앞에서 무의미해졌다. 지식의 독점 시대는 끝났다. 하버드의 명강의도, 서울대의 비법도 이제는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데이터 조각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이것을 '페이퍼 실링(Paper Ceiling, 학력에 의한 보이지 않는 장벽)의 붕괴'라고 부른다. 종이로 만든 천장이 찢어지고 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한국을 보면,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다. 마치 세상의 종말을 모른 채 평화롭게 풀을 뜯는 갈라파고스 군도 같다. 미국 기업들은 데이터로 사람을 평가하고 성과를 측정하려 애쓰지만,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쟤, 어느 학교 후배야?"라며 정성적 평가와 인맥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학생들은 의대 라이선스를 따기 위해 청춘을 불태우고, 기업은 학벌이라는 낡은 채에 걸러진 인재들만 받아들인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침몰한다. AI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세상에서, 인간이 AI와 지식 암기 대결을 펼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교육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Doing(실행)'의 시대는 갔다. 그것은 AI의 몫이다. 인간은 이제 'Directing(지시)'하고, 'Asking(질문)'하며, AI가 내놓은 결과물이 진실인지 'Verifying(검증)'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엉덩이 무거운 순응형 인재는 이제 도태될 것이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항공모함은 이미 방향을 틀었다. 학벌 파괴라는 거친 파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이 이 흐름을 거스르고 "서울대가 최고"라며 낡은 닻을 내리고 있다면, 그 미래는 명약관화하다.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낡은 졸업장을 훈장처럼 닦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종이 천장을 찢고 나와 AI라는 파도 위에 올라탈 것인가.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창문을 닫고 모른 척하기엔, 그 바람 소리가 너무나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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