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치가 0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그 문장을 허공에 툭 던졌다. 마치 잘 익은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그 말은 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청중들의 귀에 내려앉았다. AI가 등장하는 순간, 직접 노동은 자동화된다. 자동화는 대량 생산을 의미하고, 대량 생산된 것들의 가격은 필연적으로 하락한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차가운 물리 법칙이다. AGI(범용 인공지능)로 향하는 길 위에서 노동의 가치는 희미해지고, 반대로 자본의 중력은 점점 더 무거워질 것이다.
"안녕하세요. 뇌와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김대식입니다."
그는 덤덤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오늘 그는 AGI가 지배할 시장, 그리고 그 속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르는 인간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Chapter 1 다가오는 그림자, AGI의 시간
알파고가 바둑돌을 내려놓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챗GPT가 처음 말을 걸어오던 순간은? 그것들은 '특정 능력'을 가진 기계였다. 하지만 AGI는 다르다. 그것은 사회, 경제, 정치 등 인간이 가진 모든 지적 능력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다. 아직은 SF 영화 속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공기는 분명 변했다.
3년 전만 해도 회의적이었던 전문가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5년을 이야기한다. 가장 보수적인 학자들도 20년을 넘기지 않는다. 그의 생각으로는 대략 10년. 10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우리가 멍하니 창밖의 비를 바라보는 사이, 훌쩍 지나가 버릴 시간이다. AGI는 더 이상 수백 년 후의 공상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 현관문 앞까지 당도한, 실재하는 미래다.
Chapter 2 트랜스포머, 세상의 규칙을 읽다
이 모든 소란의 시작은 2017년, 구글이 내놓은 '트랜스포머(Transformer)'라는 알고리즘이었다.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수만 가지 자연 법칙과 인과 관계가 존재한다. 우리는 그저 관찰된 데이터라는 그림자를 볼 뿐이다.
오랫동안 언어학자들은 인간 언어의 문법을 기계에 가르치려 애썼다. 촘스키 같은 거장들이 찾아낸 규칙을 주입했지만, 알렉사와 시리는 여전히 인간의 말을 겉돌았다. 하지만 트랜스포머는 달랐다. 문법을 가르치는 대신, 인터넷에 떠도는 3천억 개의 문장을 통째로 던져주었다. 기계는 묵묵히 그 데이터의 바다를 헤엄치며 스스로 규칙을 찾아냈다. 그리고 완벽한 문장을 뱉어냈다. 인간조차 규명하지 못한 언어의 보편적 법칙을, 기계가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Chapter 3 사라지는 청춘의 사다리
그는 스크린에 스탠퍼드 대학교의 그래프를 띄웠다. 2022년 겨울, 챗GPT가 등장한 그 시점을 경계로 그래프의 선들이 헝클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손으로 휘저어 놓은 것처럼.
"21살에서 25살. 갓 대학을 졸업한 신입 개발자들의 채용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도, 한국도 마찬가지다.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의 시대. AI가 신입 사원 수준의 코딩을 해내는 세상에서, 기업은 더 이상 미숙한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이 사회에 나올 15년 뒤, 그곳에 AGI가 버티고 있다면 그들은 경력을 쌓을 기회조차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사다리의 첫 번째 칸이 부러진 셈이다.
Chapter 4 일회용 꿈들의 시대
콘텐츠의 세계도 변혁을 맞았다. 텍스트 몇 줄이면 1990년대 시트콤이, 2000년대 비디오 게임이 뚝딱 만들어진다. 이제 콘텐츠 시장은 극단적으로 양극화될 것이다. 사람이 만든 10%의 '슈퍼 럭셔리' 콘텐츠와, AI가 찍어낸 90%의 '일회용' 콘텐츠. 마치 종이 빨대처럼 한 번 보고 버려질 가벼운 꿈들.
더 무서운 것은 현실의 왜곡이다. 샘 올트먼이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가짜 영상, 케네디 대통령의 인터뷰가 교묘하게 조작된 영상.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역사조차 믿을 수 없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Chapter 5 에이전트와 로봇, 그리고 유토피아의 허상
생성형 AI가 정보를 만들어내는 '에피타이저'였다면, 메인 요리는 '에이전틱(Agentic) AI'다. 그리고 여기에 로봇이라는 육체를 입은 '피지컬 AI'가 더해지면, 아날로그 세상의 노동조차 기계의 몫이 된다.
실리콘밸리의 낙관론자들은 지구가 천국이 될 거라 말한다. 핵융합으로 무한한 에너지를 얻고, 인간은 노동에서 해방되어 만수르처럼 살 것이라고. 하지만 그는 픽사 영화 <월-E>의 뚱뚱하고 무기력한 인간들을 떠올렸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삶. 그것이 과연 축복일까?
Chapter 6 콥-더글라스 함수의 냉혹한 예언
경제학의 콥-더글라스 생산 함수를 기억하는가. 생산은 노동과 자본의 합작품이다. 그러나 AGI 시대에 노동의 가치가 0으로 수렴하면, 오직 자본만이 가치를 지닌다.
"결국 논리적인 답은 하나입니다. 남은 10년 동안 미친 듯이 자본을 축적하십시오."
그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속에는 서늘한 진실이 담겨 있었다. 빅테크 기업들은 '기본 소득' 대신 '기본 컴퓨트(Universal Basic Compute)'를 주겠다고 한다. 쌀 대신 GPU를 배급받는 세상. AI 시대에는 '하이퍼'한 개인 한 명이 국가 전체를 먹여 살릴 수도 있다. 기술이 주는 레버리지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이다.
Epilogue: 무엇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남겨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로마인들처럼 콜로세움에서 구경이나 하거나, 거대한 찜질방에서 수영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까?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마지막 결론을 내렸다.
"진짜 경쟁은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벌어지지 않습니다. 나보다 AI를 더 잘 활용하는 다른 인간과의 경쟁일 뿐입니다."
강연이 끝나고 박수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질문만은 무거운 안개처럼 강연장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