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희가 PD수첩에 나와 말했다. "부동산은 버티면 된다." 서울 용산, 성동, 영등포. 아파트 세 채. 자칭 100억 자산가. 임대사업자. 그는 카메라 앞에서 당당했다. 법을 어긴 것도 없고, 세금을 탈루한 것도 없다. 그러니 당당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당당함이 불편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 그 당당함이 가능한 이 사회가 무섭다.
Chapter 1 "합법"은 면죄부가 아니다
황현희를 비판하면 어김없이 이런 말이 돌아온다. "불법은 아니잖아요." 맞다. 불법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합법을 도덕의 기준으로 삼았나. 법은 항상 현실보다 늦다. 허점투성이고, 때로는 권력자 입맛대로 만들어진다. 그 허점을 파고들어 공동체 전체에 피해를 입히는 행동을 "합법이니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윤리를 법에 통째로 하청 준 것이다.
부동산은 주식이 아니다. 한정된 물리적 자원이다. 누군가 세 채를 쥐면, 다른 누군가는 한 채도 없다. 이건 제로섬이다. 황현희가 버티는 동안, 어딘가의 청년은 오늘도 월세를 내며 그 아파트의 가격이 자신의 평생 연봉을 넘어서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Chapter 2 우리가 만든 언어들
"LH거지", "전세거지", "월세충."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 퍼진 이 말들을 한번 제대로 보자. 이건 단순한 욕설이 아니다. 주거를 기준으로 인간 등급을 매기는 언어다. 집이 없으면 거지, 발언권도 없고,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논리가 그 안에 내포돼 있다.
동시에 이런 말도 돌아다닌다. "요즘엔 부자 자식이 더 배려심 많고 착하더라." 근거라고는 개인적 관찰 하나뿐인 이 문장이, 어느 순간 집단 무의식이 됐다. 빈곤을 능력의 문제로, 더 나아가 인성의 문제로 치환하는 논리다. 이 논리가 퍼지면 구조적 불평등은 논의 대상에서 사라진다. "네가 못난 것"으로 마무리된다.
Chapter 3 황현희는 증상이다
황현희 개인을 욕하고 끝내면 편하다. 그런데 그게 가장 위험한 방식이다.
황현희가 카메라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건, 그가 특별히 파렴치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다. 그 사회가 오랫동안 그에게 "잘했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아무도 그것을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명하다", "재테크 잘했다"는 칭찬을 들었을 것이다.
그 문화적 토양을 만든 것은 우리 사회다.
IMF 이후 "살아남은 자가 옳다"는 공포가 심어졌고, 부동산 폭등이 겹치면서 자산이 곧 인격이 되는 사회가 됐다. 능력주의라는 포장지를 둘렀지만 실제 내용물은 능력이 아니다. 부모 찬스, 불로소득, 상속. 이건 능력이 아니라 운과 태생이다. 그걸 모두 알면서 모른 척하는 사이, 물신주의가 우리 사회의 암묵적 도덕이 됐다.
Chapter 4 비난이 필요하다
법이 못 잡으면 공동체가 잡아야 한다.
사회적 비난은 원시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건 법보다 훨씬 오래되고, 때로는 더 효과적인 사회 통제 수단이다. 법 이전에 "그건 부끄러운 짓이야"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황현희가 받은 여론의 비판은 정당하다. 그리고 그 비판이 "불법도 아닌데 왜 욕하냐"는 말에 눌려 사그라들어선 안 된다. 오히려 그 비판을 더 명확한 언어로 이어가야 한다.
"법을 어기지 않았지만, 공동체에 피해를 입혔다. 그건 나쁜 것이다."
이 문장을 말하는 게 어색한 사회는 무너지고 있는 사회다.
Epilogue: 진짜 병은 따로 있다
황현희는 증상이다. 진짜 병은 합법을 선으로, 자산을 인격으로, 공동체를 피해자가 아닌 배경으로 취급하는 이 사회의 집단 무의식이다.
그 무의식을 바꾸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