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 Essay

타이틀이 사유를 멈출 때

: 지식권력과 자기모순에 대하여

한 건축학과 교수가 유가 정책을 비판했다. 정부가 에너지 가격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을 왜곡하는 행위이며, 각자가 알아서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그의 어조는 자신감에 차 있었고, 강의실의 학생들은 조용히 받아쓰고 있었다. 그 장면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Chapter 1 전문성의 영역과 발언의 영역은 다르다

건축학을 오래, 깊이 공부했다는 사실이 에너지 경제학이나 복지 정책에 대한 통찰을 자동으로 부여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그 교수를 폄하하는 말이 아니다. 인지심리학자 필립 테틀록이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밝혔듯, 전문가는 자기 분야에서만 전문가다. 그 경계를 넘는 순간, 그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일반인이 된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그 경계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교수님", "박사님"이라는 호칭이 붙는 순간, 그의 말은 검증보다 경청의 대상이 된다. 청중은 내용이 아니라 타이틀에 반응한다. 이것이 후광효과(Halo Effect)가 지식 사회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진짜 지식인은 자기 전문 영역 밖에서 더 조심스러워진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 영역이 얼마나 광대한지 보이기 때문이다.

Chapter 2 더닝-크루거의 사회적 버전

더닝-크루거 효과는 개인의 인지 편향에 관한 이야기지만, 한국의 학벌 위계 속에서는 사회 구조적으로 증폭된다. 스스로 의심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교수는 강의실에서 반박당하지 않고, 세미나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지며, 언론은 직함을 먼저 단다. 이 반복 속에서 자기 성찰의 근육은 서서히 퇴화한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무지의 자각"은 지적 성숙의 출발점이다. 진짜 깊이 공부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모르는 것의 윤곽이 보인다. 반면 지식의 폭이 좁을수록 그 경계가 보이지 않아 세상 전체가 자기 시야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역설이 지금 한국 지식층의 일부를 설명한다.


Chapter 3 자기모순은 왜 보이지 않는가

앞서 언급한 그 교수는 정부 개입을 비판하면서 정부 연구과제로 급여를 충당한다. 국립대나 사립대의 교원으로서 공공 시스템의 수혜자이면서 그 시스템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 모순이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보이지만 불편하기에 외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단지 위선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존재 조건을 직시하지 않는 사유는 아무리 유창해도 허공에 뜬다. 미국에서 몇 년을 보냈다는 경험이 미국 사회 전체를 이해했다는 착각으로 이어질 때, 그가 본 미국은 대학원 캠퍼스와 중산층 이웃의 단편일 뿐이다. 의료비 파산, 총기 폭력, 빈곤층의 각자도생은 그의 시야 밖에 있었다.

사다리를 오른 뒤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 그것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특권의 자기합리화다.

Chapter 4 구조를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해법은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방향은 있다. 첫째, 대학 교육과정 안에서 전공을 가로지르는 비판적 사고와 역사, 경제 소양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전공 사일로를 유지한 채 '융합'을 구호로만 외치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둘째, 지식인 사회 내부의 상호 검증 문화가 필요하다. 직함 앞에서 내용을 비판하지 못하는 분위기는 지식의 성장을 막는다. 학생은 교수에게, 후배 연구자는 선배에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불편함을 견디는 것이 학문 공동체의 존재 이유다.

셋째, 그리고 가장 어려운 것으로, 개별 지식인의 자기 성찰이다. 자신의 발언이 전문성의 경계를 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의 주장이 자신의 존재 조건과 모순되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 물음을 멈추는 순간, 타이틀은 사유의 도구가 아니라 방어막이 된다.


Epilogue: 경종

지식인의 역할은 사회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그 역할을 수행하려면 먼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어느 나라의 월급을 받고, 어느 나라의 제도 안에서 살며, 어느 나라의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을 외면한 채 수입된 이념을 유통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포즈다.

다음 세대는 지금 강의실에서 듣고 있다. 그들이 흡수하는 것은 내용만이 아니다. 사유하는 방식, 모순을 대하는 태도, 권위에 반응하는 습관까지 배운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한 교수의 일탈이 아니라 우리 지식 사회 전체가 직면해야 할 구조적 과제다.

타이틀이 사유를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을 가진 자일수록 더 많이, 더 깊이, 더 불편하게 사유해야 한다. 그것이 지식인이라는 이름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