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국제 유가를 밀어올리고 있다. 에너지를 거의 전량 수입하는 한국에서 유가 충격은 서민 가계와 중소 물류업, 농어업 현장에 직격으로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유가 안정화 정책을 두고 "시장 왜곡"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미국 유학파 건축학과 교수였다. 그는 각자도생이 옳다고 했다. 그의 이동 수단은 전기차였다.
Chapter 1 완성된 자의 설교
각자도생을 설파하는 사람들에게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이미 도생(圖生)을 완료한 사람들이다. 안정된 직장, 자산, 네트워크 — 생존의 기반이 구축된 자리에서 "스스로 살아남아라"고 말하는 것은 조언이 아니라 선언이다. "나는 다 갖췄으니 사다리를 치운다"는 선언.
경제학자 하준장(Ha-Joon Chang)은 이것을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라고 불렀다. 선진국들이 보호무역과 산업정책으로 성장한 뒤 개발도상국에는 자유시장을 강요하는 역사적 패턴을 분석한 개념이지만, 그 논리는 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신이 올라온 방법과 전혀 다른 방법을 타인에게 요구하는 것.
각자도생을 설교하는 자는 언제나 도생을 이미 완료한 자다. 그 설교가 울려 퍼지는 강의실에는, 아직 시작도 못한 사람들이 앉아 있다.
Chapter 2 자기모순이 보이지 않는 이유
그 교수는 국가 연구비를 받는다. 공공 교육 시스템 안에 있다. 도로와 전력망과 법원이라는 공공 인프라 위에서 생활한다. 그러면서 정부 개입을 비판한다. 이 모순이 본인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위선이라기보다 인지 구조의 문제에 가깝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시스템 정당화 이론(System Justification Theory)"에 따르면, 기존 시스템의 수혜자일수록 그 시스템을 공정하다고 믿는 경향이 강해진다. 자신의 성공이 시스템 덕이 아니라 본인 능력 덕이라고 믿어야 그 성공이 더 가치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수혜를 지울수록 자기 서사가 빛난다.
후광 효과(Halo Effect) — 특정 분야의 권위가 무관한 영역에서도 신뢰로 전이되는 현상. 건축 전문가의 발언이 에너지 경제 분야에서도 권위 있게 수용되는 구조.
더닝-크루거 효과 — 특정 분야의 지식이 낮을수록 자신감이 높아지는 인지 편향. 전공 밖 영역에서 가장 자신 있게 발언하는 역설.
시스템 정당화 이론 — 기존 체제의 수혜자일수록 그 체제를 공정하다고 인식하는 경향. 기득권의 보수화를 설명하는 핵심 심리 기제.
Chapter 3 능력주의라는 이름의 계급 재생산
주변을 둘러보면 이 구조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명문대를 나와 안정적인 전문직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이 있다. "나는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다. 시스템은 공정하다. 못 오른 건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이것이 능력주의(meritocracy)의 핵심 서사다.
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이 서사의 잔인함을 정확히 짚었다. 능력주의는 성공한 자에게 오만을, 실패한 자에게 수치를 부여한다. 구조적 불평등은 지워지고, 결과만 남아 개인의 책임이 된다. 그리고 그 서사가 가장 강하게 내면화된 사람이 바로 그 시스템의 최대 수혜자들이다.
선거가 이를 증명한다. 객관적 지표로 민주주의와 경제 지표를 후퇴시킨 정권에 반복적으로 표를 던지는 고학력 전문직이 존재한다. 이것은 무지의 결과가 아니다. 자신의 계층 이익을 정교하게 계산한 합리적 선택이다. 공공선보다 사적 자산이 먼저인 것이다.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그 계산이 더 정밀해진다는 아이러니와 함께.
Chapter 4 침묵하는 소수의 피로
이 구조 안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점점 침묵을 선택한다. 가족 모임에서, 직장에서, 강의실에서. 반박해봐야 관계만 상하고 상대의 확신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몇 번의 경험으로 학습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패배가 아니라 생존이다. 그러나 그 침묵이 쌓이면 공론장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지고, 기득권의 서사만 더 크게 울리게 된다.
한나 아렌트가 경고한 "악의 평범성"은 거대한 악인의 등장이 아니라 평범한 다수의 무감각한 선택들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결과를 가리킨다. 나쁜 사람이 없어도 나쁜 결과는 만들어진다. 그 결과는 늘 가장 취약한 곳으로 먼저 떨어진다.
Epilogue: 지적 자기 방어
이 글은 특정인을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우리 사회가 "전문가"와 "권위"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타이틀은 해당 분야의 깊이를 보증할 뿐, 모든 영역에 대한 발언권을 자동으로 부여하지 않는다. 청중이 그것을 구분하지 않을 때, 권위는 비판의 방패가 된다.
전기차를 타는 것은 좋은 선택이다. 서울에 건물을 가지는 것도 누군가의 성취일 수 있다. 국가 연구비를 수주하는 것도 능력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가능했던 조건들 — 공공 시스템, 사회적 인프라, 국가의 개입 — 을 지워버리고 "각자도생"을 설교하는 순간,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자기 이익의 언어화다.
우리는 그 언어에 더 이상 압도당하지 않아도 된다. 타이틀이 아니라 논리를 보고, 권위가 아니라 근거를 따져야 한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의 시민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지적 자기 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