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정치인의 SNS에 올라온 글 하나가 온라인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주머니 사정 뻔한 청년들이 천 원 한 장 아끼려 발버둥 치며 '거지맵'을 뒤진다는 짠한 소식, 그리고 그들과 함께 동네 단골 식당에서 국밥 한 그릇 비워냈다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글에는 분명 팍팍한 살림살이를 다독이고 함께 살자며 손을 내미는 온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 아래 달린 댓글창은 달랐다. 상생이라는 말은 간데없고, 살을 에는 듯한 분노와 비수가 되어 꽂히는 비난이 펄펄 끓어 넘쳤다.
Chapter 1 '스팀팩'이 남긴 흉터와 쉬운 범인 찾기
댓글들이 악을 쓰며 지적하는 '돈 풀기'가 내 지갑을 얇게 만든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부은 건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앞뒤 맥락을 잘라낸 채 모든 죄를 한 사람에게만 뒤집어씌우는 건 위험한 불장난이다.
코로나19라는 정체 모를 괴물이 세상을 덮쳤을 때,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때 뿌린 돈은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인 시장경제에 급하게 꽂아 넣은 스팀팩이자, 실낱같은 생명선이었다.
미국 같은 덩치 큰 나라들은 우리보다 훨씬 무지막지하게 달러를 찍어냈고, 그 돈의 파도는 전 세계를 집어삼키며 우리 안마당까지 덮쳤다. 만약 그때 곳간 문을 걸어 잠갔다면, 지금 댓글창에서 분노를 터뜨리는 바로 그 평범한 이웃들이 가장 먼저 길바닥으로 나앉았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대중의 분노가 이런 복잡한 속사정을 들여다볼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삶이 퍽퍽하고 내일이 막막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탓할 범인을 찾는다. "저놈들이 돈을 뿌려서 내 지갑이 가벼워졌다"는 문장은 복잡한 세상을 단칼에 설명해 주는, 너무나 매혹적인 진통제가 된다.
Chapter 2 분노를 권력으로 바꿔 먹는 장사
이런 심리를 가장 영악하게 이용하는 이들이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팍팍한 삶을 바꿀 정교한 처방전을 짜기보다, 울분을 쏟아낼 과녁을 만들어내는 데 귀신같은 재주를 부린다.
특정 집단이나 정당을 향해 삿대질하며 "저들이 당신의 밥그릇을 뺏어갔고 당신의 꿈을 짓밟았다"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 순간 정치는 누가 더 잘 일하느냐의 경쟁이 아니라, 누구를 더 잘 미워하느냐의 경연장으로 변질된다.
대중이 분노에 눈이 멀어 허수아비 적을 때려잡는 데 기운을 다 쓰는 동안,
권력자는 그들의 삶을 보듬지 않은 채 증오를 연료 삼아 자기 자리를 지킨다.
지지자들은 분노에 취해 정작 자신에게 독이 되는 표를 던지기도 한다. 복지는 깎이고, 힘 있는 자들의 뒤는 봐주며, 삶을 개선할 실질적 변화는 뒤로 밀린다. 분노가 정당한 감시가 아니라 이성 잃은 배설이 될 때, 정치는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아니라 갈등을 팔아 권력을 챙기는 '증오 산업'으로 바뀐다.
Chapter 3 스마트폰의 서늘한 빛과 악마가 된 이웃
더 가슴 아픈 건, 이 거대한 분노의 맷돌이 낯선 누군가만 갈아 넣는 게 아니라 우리 곁의 선량한 이웃과 가족까지 함께 갈아 넣는다는 사실이다. 평생 자식 걱정하며 온화하게 살아온 부모님조차, 유튜브와 SNS 알고리즘이 밀어 넣는 미움의 사슬 속에서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 간다.
알고리즘은 내가 한 번 클릭한 분노의 씨앗을 집어삼켜, 끝내 괴물 같은 숲으로 키운다. 보고 싶은 것만 비춰주는 거울 속에 갇히면, 반대편 사람은 대화할 이웃이 아니라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악마가 된다.
그렇게 사회는 반으로 쪼개진다. 사람들은 서로를 설득할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제거해야 할 상징으로 취급한다. 이 악순환이 반복될수록 상처는 더 깊어지고, 분노는 다시 더 손쉬운 정치 자산이 된다.
Chapter 4 차가운 이성을 깨워야 할 시간
그럼에도 우리는 이 미친 분노의 파도 속에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광장에 나가 촛불을 켜는 것만큼 중요한 건, 내 마음속에 야금야금 스며든 혐오의 찌꺼기를 씻어내는 일이다.
누군가 나에게 적을 가리키며 화를 내라고 부추길 때, 우리는 잠시 멈춰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화가 정말 내 삶을 낫게 하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권력을 태워줄 땔감으로 쓰이고 있는가.
내 곁의 사람들에게도 날 선 반박 대신 조용히 손을 맞잡고 물어볼 필요가 있다. 꼬인 현실을 똑바로 보고, 달콤한 선동에 내 귀한 표와 이성을 팔아넘기지 않으려는 '깨어 있는 개인'들의 눈빛만이 혐오를 먹고 자라는 정치를 멈출 수 있다.
Epilogue: 국밥의 온기
'거지맵'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누군가를 악마로 만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처한 고통의 실체를 정직하게 마주하고, 그 고통을 표 장사로 이용하려는 손길을 단호히 쳐내는 매운 시민의식에서만 답이 나온다.
지금의 댓글창은 서슬 퍼런 칼날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끝내 이성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곳에도 6,000원짜리 국밥 한 그릇이 품고 있던 상생의 온기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적을 찾는 일은 쉽다. 함께 살 방법을 찾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더 어렵고 더 느린 쪽을 붙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