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 Fiction

주소를 먹는 집

2026. 05. 12

7월 입주라 했다.

서초구 재건축 아파트는 아직 비닐을 다 벗기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창문마다 파란 보호필름이 붙어 있었고, 햇빛은 그 필름을 핥다가 푸르게 멍든 채 떨어졌다. 단지 입구에는 새 흙 냄새가 났다. 물을 덜 먹은 조경수 뿌리에서 올라오는 비린내, 아직 마르지 않은 시멘트의 석회 냄새, 모델하우스에서 뿌린 싸구려 방향제 냄새가 한꺼번에 코 안쪽에 들러붙었다.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3분.

그 3분이라는 말은 유리문에 붙은 금박 스티커처럼 번쩍거렸다. 사람들은 그 3분을 보러 왔다. 아이 손을 잡은 여자도, 발목에 압박스타킹을 신은 노인도, 검은 세단에서 내린 사내도, 모두 같은 방향으로 목을 길게 뺐다.

집을 보러 온 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숫자를 보러 왔다.

15억.

주변 시세보다 20억 낮은 분양가.

종이에 찍힌 숫자는 고기 냄새를 풍겼다. 뜨겁게 달군 불판 위에 떨어진 기름처럼 사람들의 눈동자에 번들거렸다. 청약 접수 창구 앞에서 스마트폰 액정들이 푸른 비늘처럼 번쩍였다. 손가락들이 화면 위를 빠르게 기어 다녔다. 딱, 딱, 딱. 손톱 끝이 강화유리를 찍는 소리가 메뚜기 떼처럼 튀었다.

가장 작은 18평형.

방 두 개.

화장실 하나.

거기에 3천 명이 넘게 달라붙었다.

집은 아직 사람을 들이지도 않았는데 벌써 숨이 찼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비닐과 쇠 냄새가 났다. 버튼마다 새것 특유의 얇은 기름막이 묻어 있었고, 누르면 손끝에 미끈한 감촉이 남았다. 18평형 현관문을 열자, 텅 빈 거실이 입을 벌렸다.

도배지는 흰색이었다.

너무 희어서 사람 그림자를 삼켰다.

방 하나에는 퀸사이즈 침대 하나만 넣어도 문이 반쯤 걸릴 듯했다. 작은 방은 책상 하나, 의자 하나, 옷장 하나가 들어가면 사람이 옆으로 지나가야 했다. 화장실은 타일 냄새와 실리콘 냄새로 꽉 차 있었다. 변기 뚜껑은 아직 투명 비닐을 쓰고 있었고, 세면대 아래 배관은 은색 내장을 드러낸 짐승처럼 구부러져 있었다.

* * *

그 집에 여섯 명이 당첨됐다.

아니, 당첨자는 한 명이었다.

서류상으로 여섯 명이었다.

주민등록등본 위에서 아버지가 걸어 들어오고, 어머니가 따라 들어오고, 장인과 장모가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인천에 살던 큰아들도 서울 집 안으로 접혀 들어왔다. 종이는 참 넓었다. 18평짜리 집보다 넓었다. 방 두 개짜리 집에는 사람 여섯이 눕기 어려웠지만, A4 한 장에는 여섯 이름이 반듯하게 누웠다.

검은 잉크 냄새가 났다.

등본을 갓 뽑으면 종이는 미지근했다. 프린터 안에서 나온 열이 아직 남아 있어 손바닥에 닿으면 갓 낳은 달걀 같았다. 그 위에 이름들이 찍혀 있었다. 이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주소 칸에 나란히 박혀 있었다.

서울 서초구.

그 글자 밑에서 사람들은 숨을 쉬지 않았다.

그들은 밤에 그 집에서 이를 닦지 않았다. 싱크대 배수구에 라면 국물을 붓지 않았다. 베란다에 양말을 널지 않았다. 변기 물을 내리지 않았다. 새벽에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지도 않았다. 그런데 서류 속에서는 그들이 살았다.

완벽하게 살았다.

* * *

동사무소 형광등 아래에서 주소는 생선 비늘처럼 번쩍였다. 민원창구 앞 플라스틱 의자는 오래된 땀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순번표 기계는 툭, 툭, 작은 혀를 내밀었다. 번호가 찍힌 종이를 뽑은 사람들은 그 종이를 부적처럼 움켜쥐었다.

"전입신고 하러 왔는데요."

목소리들은 낮았다. 너무 낮아서 바닥 타일 사이로 스며들었다.

창구 직원은 주민등록증을 받고 모니터를 봤다. 키보드가 자잘하게 울었다. 타다닥, 타닥. 플라스틱 키 밑에서 주소들이 옮겨 다녔다. 사람 몸은 그대로인데 주소만 먼저 이사를 갔다. 주소는 몸보다 가벼웠다. 주소는 짐을 싸지 않았다. 냄비도, 이불도, 칫솔도 필요 없었다.

마우스 한 번.

엔터 한 번.

그러면 인천의 아들이 서울 아들이 됐다. 시골의 부모가 강남 부모가 됐다. 장인과 장모가 한 집의 식구가 됐다. 실리콘 냄새 나는 새 아파트 안으로 이름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 * *

밤이 되면 그 이름들이 벽에서 기어 나왔다.

방 두 개짜리 집.

아직 아무도 입주하지 않은 새집.

거실 바닥에 달빛이 얇게 깔리면, 등본 속 이름들이 한 명씩 바닥에 앉았다. 아버지는 현관 앞에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어머니는 싱크대 아래에 등을 붙였다. 장인은 작은 방 문턱에 발을 걸쳤다. 장모는 화장실 앞에 쪼그려 앉았다. 큰아들은 베란다 난간에 등을 대고 서 있었다. 당첨자는 거실 한가운데 서서 자기 이름을 내려다봤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말 대신 종이 냄새가 났다.

마른 풀을 오래 씹은 듯한 냄새. 복사기 토너 냄새. 서랍 속에 넣어둔 인감도장의 붉은 기름 냄새. 등본에 묻은 손가락 기름 냄새.

그 집은 사람을 먹는 게 아니었다.

주소를 먹었다.

주소가 많을수록 배가 불렀다. 부양가족 수가 많을수록 점수표가 살쪘다. 점수표는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받으며 살을 찌웠다. 무주택 기간은 뼈가 되고, 청약 통장 가입 기간은 힘줄이 되고, 부양가족 수는 두툼한 지방이 됐다. 점수표는 책상 위에서 꿈틀거렸다. 누구보다 오래 기다린 3인 가족의 종이는 납작했다. 아무리 눌러도 부풀지 않았다. 아이 하나를 안고 온 부부의 손등에는 핏줄만 파랗게 솟았다.

* * *

그들은 모델하우스 밖 벤치에 앉아 종이컵 커피를 마셨다.

커피는 미지근했고, 종이컵 테두리는 금세 눅눅해졌다. 남자는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여자는 유모차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아이는 잠들어 있었고, 입가에 마른 침 자국이 흰 실처럼 붙어 있었다.

"우린 안 되겠네."

남자가 말했다.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톱으로 유모차 손잡이 고무를 긁었다. 검은 고무 껍질이 아주 조금 벗겨져 손톱 밑으로 들어갔다.

그때 단지 맞은편 부동산 유리문이 열렸다.

안에서 중년 사내가 나왔다. 구두가 번쩍였다. 밑창은 새것처럼 단단했고, 걸을 때마다 또각, 또각, 돌바닥을 씹었다. 그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벌금? 걸려도 몇백이면 끝난다니까. 분양권은 일단 잡고 보는 거야."

그 말이 바람에 얹혀 흘러왔다.

여자는 고무 손잡이를 더 세게 긁었다. 손톱 밑으로 검은 가루가 끼었다. 아이가 잠깐 몸을 뒤척였다. 유모차 바퀴가 보도블록 틈에 걸려 삐걱거렸다.

* * *

부동산 안쪽은 더웠다.

벽에는 매물 종이가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34평, 45억. 25평, 32억. 급매. 초급매. 로얄동. 로얄층. 글자들이 붉고 푸른 매직으로 칠해져 있었다. 사무실 가운데 놓인 가죽 소파에서는 오래된 담배 냄새와 인조가죽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에어컨은 웅웅거리며 돌았지만 사무실 천장에 달라붙은 돈 냄새를 밀어내지 못했다.

브로커는 손톱이 짧았다.

너무 짧아서 손끝 살이 붉게 드러나 있었다. 그는 서류봉투를 만질 때마다 엄지로 모서리를 문질렀다. 봉투 안에는 분양권이 있었다. 종이 몇 장. 도장 몇 개. 서명 몇 줄. 그런데 그 봉투는 묘하게 무거웠다. 금덩이처럼 무거운 게 아니라, 젖은 흙덩이처럼 무거웠다. 들면 손목이 아래로 꺾였다.

"불법인 줄 몰랐다고 하면 돼."

브로커가 말했다.

상대 남자는 침을 삼켰다. 목젖이 위아래로 미끄러졌다. 그의 셔츠 목깃에는 땀이 둥글게 번져 있었다. 창밖에서는 자동차들이 여름 아스팔트 위를 지나갔다. 타이어가 녹은 껌을 밟는 듯 끈적한 소리를 냈다.

그 봉투들이 몇 년 동안 도시를 돌아다녔다.

사람 손에서 사람 손으로.

부동산 책상 밑에서.

카페 구석자리에서.

주차장 기둥 뒤에서.

결혼식장 화장실 앞에서.

봉투는 늘 갈색이었다. 봉투 주둥이는 침으로 붙인 듯 끈적했고, 안쪽에서는 종이가 서로 몸을 비볐다. 사각, 사각. 밤에 들으면 벌레가 벽지를 갉는 소리와 비슷했다.

* * *

정부가 조사에 나선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텔레비전 앞에서 잠깐 젓가락을 멈췄다.

"실거주 여부 전수조사…"

앵커의 목소리는 반듯했다. 너무 반듯해서 날이 없었다.

식탁 위 된장찌개는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멸치 냄새, 두부 냄새, 파 냄새가 방 안을 채웠다. 한 남자는 리모컨을 들어 음량을 줄였다. 그의 손가락에는 반지가 끼어 있었고, 반지 안쪽 살은 희게 눌려 있었다.

"다 조사한대."

아내가 말했다.

남자는 국그릇 가장자리에 묻은 된장을 엄지로 닦았다. 그리고 그 엄지를 입에 넣었다. 짠맛이 혀에 퍼졌다. 그는 천천히 씹었다. 씹을 것도 없는데 씹었다.

"서류상 문제없어."

그가 말했다.

그 말이 식탁 위에 떨어졌다.

문제없어.

참 편한 말이었다. 냄새도 없고 무게도 없는 말. 하지만 그 말이 떨어진 자리에서 밥알 하나가 굴러 내려와 바닥에 붙었다. 아이가 그 밥알을 발바닥으로 밟았다. 밥알은 납작하게 터졌다. 발바닥에 끈끈하게 붙었다.

* * *

법원 복도는 늘 차가웠다.

바닥 대리석은 사람 발소리를 얇게 튕겨냈다. 구두, 운동화, 슬리퍼, 군화 같은 발소리들이 서로 부딪혀 천장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판결문은 흰 종이에 검은 글자였다. 벌금 500만 원. 벌금 300만 원. 벌금 700만 원.

숫자들이 줄줄이 앉아 있었다.

그 숫자들은 조용했다.

분양가와 시세 차이 20억이라는 숫자 앞에서, 벌금 500만 원은 마른 멸치 한 마리 같았다. 상 위에 놓으면 젓가락으로 툭 밀려나는 크기였다. 누군가는 그 멸치를 씹고, 봉투를 챙기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하주차장은 고무 냄새와 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형광등은 드문드문 깜박였고, 차체 위로 희끄무레한 빛이 미끄러졌다. 남자는 차 문을 열기 전 잠깐 멈춰 섰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 부르르르. 작은 벌레가 허벅지를 갉는 것 같은 진동이었다.

문자가 와 있었다.

"환수 어렵대."

남자는 화면을 오래 봤다. 그러고는 입술 끝에 묻은 침을 혀로 훑었다. 차 안에서는 새 차 방향제 냄새가 났다. 그는 운전석에 앉아 문을 닫았다. 세상 소리가 한 꺼풀 줄어들었다.

* * *

밖에는 아직 집이 서 있었다.

18평짜리 집.

방 두 개.

화장실 하나.

그 안에 여섯 명의 이름이 살고 있었다.

밤마다 그 이름들은 벽에서 내려와 바닥에 앉았다. 아버지 이름은 현관에, 어머니 이름은 싱크대에, 장인 이름은 작은 방에, 장모 이름은 화장실 앞에, 아들 이름은 베란다에. 그들은 밥을 먹지 않았다. 잠을 자지 않았다. 양치컵을 쓰지 않았다. 대신 집 안 공기를 조금씩 마셨다.

그리고 벽지가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새 벽지였다. 그런데 이름들이 앉았던 자리마다 희미한 얼룩이 번졌다. 현관에는 늙은 손바닥 모양의 얼룩이 생겼고, 싱크대 아래에는 무릎 두 개가 닿은 자국이 생겼다. 작은 방 문턱에는 발가락 모양의 검은 때가 묻었다. 화장실 앞 타일에는 물방울도 없는데 곰팡이 냄새가 났다.

집은 알고 있었다.

누가 사는지.

누가 살지 않는지.

* * *

관리사무소 직원이 처음 그 냄새를 맡았다. 입주 전 점검을 하러 들어갔다가 코를 찡그렸다.

"이상하네. 새집인데 왜 헌집 냄새가 나지."

그는 창문을 열었다.

바깥바람이 들어왔다. 단지 아래로 자동차 소리, 아이들 소리, 택배 카트 바퀴 소리가 밀려왔다. 그러나 방 안 냄새는 빠지지 않았다. 오래 접어둔 가족관계증명서 냄새, 남의 집 우편함에 꽂힌 고지서 냄새, 빈집 신발장에 갇힌 발 냄새가 그대로 남았다.

그 냄새는 벽 안쪽에서 나왔다.

주소가 썩는 냄새였다.

* * *

사람들은 집을 얻으려고 주소를 옮겼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주소가 사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인천에 살던 아들은 퇴근길에 자기 집 앞을 지나쳤다. 이상하게 발이 멈추지 않았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서초구 새 아파트 앞까지 왔다. 그는 경비실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입주도 하지 않은 동을 올려다봤다. 파란 보호필름이 붙은 창문 하나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창문 안쪽에서 자기 이름이 손짓했다.

아들은 목덜미를 긁었다. 손톱에 땀이 묻었다. 돌아가려 했지만 발바닥이 보도블록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너 어디냐?"

아들은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자기 주소가 먼저 대답했다.

서울 서초구.

그 말이 혀 밑에서 돌멩이처럼 굴렀다.

그 밤, 도시 곳곳에서 사람들이 잠깐씩 길을 잃었다. 장모는 시장에서 콩나물을 사 들고 엉뚱한 버스를 탔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약 봉투를 들고 지하철 반대 방향 승강장에 섰다. 장인은 집 비밀번호를 세 번 틀렸다. 어머니는 냉장고 문을 열고 한참 동안 안을 들여다봤다. 두부, 김치, 멸치볶음, 계란. 모두 제자리에 있었는데, 그녀는 자기 집 부엌이 남의 부엌처럼 보였다.

주소가 몸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서류 속으로.

점수표 속으로.

18평짜리 방 두 개짜리 집 속으로.

* * *

마침내 입주 날이 왔다.

이삿짐 트럭들이 단지 안으로 줄지어 들어왔다. 사다리차가 쇠목을 길게 세웠고, 냉장고와 장롱과 매트리스가 허공을 건너갔다. 포장 이불에서는 먼지 냄새가 났고, 새 가전제품 박스에서는 종이와 스티로폼 냄새가 났다. 아이들이 뛰었다. 개가 짖었다. 누군가 현관 비밀번호를 크게 외쳤다.

그 집 문도 열렸다.

당첨자는 혼자 들어왔다.

손에는 열쇠가 있었다. 열쇠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현관에 서서 새집 냄새를 맡으려 했다. 그러나 코 안으로 들어온 것은 새집 냄새가 아니었다.

여섯 사람의 숨 냄새였다.

살지 않은 사람들이 남긴 숨.

신지 않은 신발의 고무 냄새.

눕지 않은 이불의 면 냄새.

먹지 않은 밥의 김 냄새.

틀지 않은 수도의 녹 냄새.

그는 신발을 벗지 못했다. 현관 센서등이 그의 머리 위에서 하얗게 켜졌다. 불빛 아래 먼지가 떠다녔다. 먼지 하나하나가 작은 주민등록번호처럼 보였다.

거실 한가운데, 보이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장인.

장모.

아들.

그리고 자기 자신.

그들은 모두 종이처럼 얇았다. 얼굴은 없고 이름만 있었다. 이름들이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방 두 개와 화장실 하나를 꽉 채우고 있었다. 그는 한 발을 들었다가 내려놓지 못했다.

집이 말했다.

아니, 벽지가 바스락거리며 말했다.

여기 살 거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이 말랐다. 혀가 입천장에 들러붙었다. 손에 쥔 열쇠가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금속 모서리가 살을 눌렀다. 그는 그제야 알았다.

집은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집은 사람을 들여놓기 전에 먼저 묻는다.

네 이름 말고, 네 몸은 어디 있었냐고.

네 가족 말고, 네 밤은 어디서 잤냐고.

네 점수 말고, 네 발 냄새는 어느 현관에 남아 있냐고.

그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현관문 밖으로 한 걸음 나갔다. 센서등이 꺼졌다. 집 안이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여섯 개의 이름이 조용히 접혔다. 등본처럼 반듯하게. 봉투 속 종이처럼 납작하게.

문이 닫혔다.

복도에는 새 아파트 냄새가 났다.

하지만 문틈 아래로는 아직도 썩은 주소 냄새가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