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문이 열릴 때마다 매장은 숨을 들이켰다.
비 오는 날 아침이었다. 바깥 보도블록 틈에서는 검은 물이 고여 있었고, 손님들 구두 밑창에 붙어온 흙물이 카운터 앞 타일에 길게 번졌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쇳덩이 가슴을 부풀렸다가, 쉭, 하고 김을 토했다. 우유 거품이 피어오를 때마다 젖은 수건 냄새와 탄 원두 냄새가 서로 목덜미를 물고 돌았다.
민규는 포스터를 들고 있었다.
초록색 바탕. 번쩍이는 텀블러. 작고 둥근 바퀴 무늬. 위에는 굵은 글씨.
탱크데이.
그 아래 작게 적힌 문장.
책상에 탁.
민규는 순간 손가락을 멈췄다. 포스터 모서리에 묻은 본드가 손톱 밑으로 들어갔다. 끈적했다. 손을 털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뭐 해. 빨리 붙여."
매니저가 말했다. 목소리는 얼음통 안에서 굴러다니는 스테인리스 스쿱 같았다. 가볍고 차갑고 시끄러웠다.
민규는 유리창 안쪽에 포스터를 붙였다. 고무 헤라로 밀자, 종이 속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갔다. 뽀드득. 뽀드득. 글자 밑에서 작은 기포들이 터졌다.
탁.
손바닥이 유리를 쳤다.
민규는 그 소리에 눈꺼풀이 튀었다. 누가 뒤통수를 아주 얇은 자로 때린 것처럼 목덜미가 뻣뻣해졌다. 그는 포스터를 바라봤다. 탱크 모양 텀블러가 유리창 너머 빗물 속에서 흔들렸다. 지나가는 버스의 붉은 브레이크등이 그 표면을 핥고 지나갔다. 텀블러 뚜껑은 포신처럼 삐죽했고, 손잡이는 철모의 턱끈처럼 보였다.
"예쁘지 않냐. 한정판이래."
매니저는 자기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민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안에 원두 가루가 들어간 것처럼 혀끝이 까끌거렸다.
아홉 시 십칠분.
첫 손님은 검은 우산을 접으며 들어온 여자였다.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카운터 앞에 서자마자 그녀는 메뉴판을 보지 않았다. 유리창을 봤다.
탱크데이.
책상에 탁.
여자의 오른손이 가방끈을 움켜쥐었다. 가죽이 삐걱거렸다. 손등의 핏줄이 짧게 솟았다. 입술이 살짝 벌어졌는데 말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숨이 나왔다. 얇고 뜨거운 숨이었다. 비닐우산 냄새, 젖은 머리 냄새, 오래 닫아둔 서랍 냄새가 그 숨에 섞여 있었다.
"주문 도와드릴게요."
민규가 말했다.
여자는 민규를 보지 않고 포스터만 보았다.
"저거 누가 붙였어."
민규는 목젖을 삼켰다. 삼키는 소리가 자기 귀 안에서 굴렀다.
"본사에서 내려온 행사물입니다."
"오늘이 며칠인지 알아?"
매장 안 음악이 그때 바뀌었다. 밝은 재즈 피아노가 통통 뛰기 시작했다. 너무 환해서 더럽게 들렸다. 스팀 노즐에서 김이 올라왔다. 쉭쉭. 누군가 우유를 데우고 있었다. 그 소리가 갑자기 오래된 라디오 잡음 같았다. 누가 멀리서 이름을 부르는데,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웅얼거렸다.
민규는 말했다.
"오월 십팔일입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느리게. 턱끝에 맺힌 빗물이 떨어졌다. 카운터 나무판 위에 작은 점이 생겼다.
"그럼 저 말이 어디서 왔는지도 알아?"
민규는 대답하지 못했다.
여자는 웃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그냥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손끝이 지갑 모서리를 세 번 긁었다. 사각. 사각. 사각. 그러고는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고 나갔다.
문이 닫혔다.
초록색 포스터가 유리창에 납작하게 붙어 있었다. 바깥 빗물이 글자 위로 흘렀다. 탁이라는 글자가 물살 속에서 찢겼다 붙었다 했다.
열 시 반부터 매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핸드폰 알림음들이 여기저기서 튀었다. 띠링. 띠링. 띠링. 손님들이 컵을 들고 포스터를 찍었다. 어떤 남자는 찍자마자 씹던 빨대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어떤 학생은 텀블러 진열대 앞에서 가격표를 들여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오백삼 밀리?"
그 말이 매장 바닥에 떨어졌다. 투명한 얼음 조각처럼 굴러갔다.
민규는 진열대 쪽을 보았다. 탱크 텀블러들이 줄지어 있었다.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작은 포신 같은 뚜껑들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금속 표면에는 매장 조명이 흰 칼자국처럼 번쩍였다. 하나를 집어 들면 묵직했다. 손바닥에 차가운 쇠기운이 박혔다.
오백삼 밀리리터.
숫자는 그냥 숫자일 수도 있었다. 민규도 그렇게 배웠다. 숫자는 상품 코드이고, 용량이고, 재고이고, 매출표의 칸이었다. 그런데 어떤 숫자는 종이 위에 얌전히 누워 있지 않았다. 어떤 숫자는 사람 목덜미를 붙잡고 뒤로 끌고 갔다. 어떤 숫자는 물속에서 올라온 아이의 운동화 끈처럼 손가락에 감겼다.
민규는 탱크 텀블러를 내려놓았다.
탁.
이번에는 진열대가 울었다.
정오가 지나자 본사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포스터 회수.
상품 진열 중단.
고객 응대 문구 통일.
매니저는 사무실에서 프린트한 종이를 들고 나왔다. 손이 떨렸다. 종이 끝이 바람도 없는데 파르르 떨었다.
"문의 오면 이렇게 말해. '의도하지 않은 표현으로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알았지?"
민규는 종이를 보았다.
의도하지 않은 표현.
그 문장은 비닐장갑 같았다. 손에 끼면 뭔가를 만질 수는 있는데, 온도도 질감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얇은 막. 그 안에서 손바닥은 계속 땀을 흘렸다.
"불편이 아니잖아요."
민규가 말했다.
매니저가 고개를 들었다.
"뭐?"
"불편한 게 아니잖아요. 누가 의자 삐걱거려서 싫은 게 아니잖아요."
매니저는 입술을 눌렀다. 그 입술 위로 립밤 냄새가 올라왔다. 복숭아 향이었다. 이 상황에 복숭아라니. 매장 전체가 타버린 종이 냄새로 가득한데, 그 입술만 혼자 과일가게 앞에 서 있었다.
"너 지금 말 조심해."
"조심은 누가 해야 되는데요."
민규의 목소리가 작았다. 작아서 더 잘 들렸다. 주변 직원들이 컵을 닦다 멈췄다. 유리컵 안쪽에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매니저는 말없이 포스터를 떼기 시작했다. 유리에 붙은 종이가 잘 떨어지지 않았다. 끈끈이가 길게 늘어졌다. 찢어진 초록색 종이 안쪽은 하얬다. 밖에서는 화려했는데, 속은 그냥 싸구려 펄프였다.
포스터가 반쯤 찢겨 나갔을 때 한 노인이 들어왔다.
키가 작았다. 낡은 회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점퍼 소매 끝은 반질반질했다. 비를 맞은 옷에서 지하도 냄새와 오래된 약 냄새가 났다. 노인은 카운터 앞에 서서 찢겨진 포스터를 보았다.
"아메리카노 하나."
"따뜻한 걸로 드릴까요?"
노인은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 하나가 조금 휘어 있었다. 손톱 밑에는 흙 같은 것이 끼어 있었다. 아니, 흙은 아니었다. 너무 오래된 얼룩이었다. 물로 씻어도 안 빠지는 종류의 것.
"따뜻한 물로 해줘."
민규는 컵을 꺼냈다. 뜨거운 물이 종이컵 안으로 떨어졌다. 졸졸졸. 물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노인은 커피를 받지 않고 포스터를 계속 봤다.
"저런 건 말이 먼저 사람을 죽이는 거여."
그는 낮게 말했다.
매니저가 굳었다.
노인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총보다 먼저 말이 오고, 몽둥이보다 먼저 말이 와. 사람을 바닥에 눕혀놓고, 거기 이름표를 붙여. 폭도. 빨갱이. 불순분자. 그 다음에 때려. 말이 먼저 가서 자리를 깔아놓는 거여."
민규는 컵 뚜껑을 닫지 못했다. 뜨거운 김이 손등을 핥았다. 따끔했다.
노인은 지갑에서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흑백 속에 젊은 남자 셋이 서 있었다. 한 명은 흰 셔츠를 입었고, 한 명은 머리를 짧게 깎았고, 한 명은 카메라 쪽을 보지 않았다. 사진 속 햇빛은 오래되어 누렇게 말라 있었다.
"얘가 내 동생이여."
노인은 가운데 남자를 손톱으로 톡 쳤다.
톡.
그 소리는 아주 작았는데, 매장 안 모든 소리를 밀어냈다. 커피머신도, 냉장고도, 음악도 그 소리 뒤로 물러났다.
"그날 이후로 엄니가 밥을 지으면 늘 한 공기 더 놨어. 밥이 식으면 밥알이 딱딱해지잖어. 그걸 밤마다 손으로 으깼어. 말 한마디 없이. 손가락에 밥풀이 붙으면 벽에 문질렀어. 벽지가 누래졌지."
노인은 사진을 다시 지갑에 넣었다.
"근데 여긴 참 향이 좋네."
그가 매장을 둘러봤다.
"탄 냄새도 이렇게 비싸게 팔 수 있구나."
민규는 컵을 내밀었다. 노인은 받았다. 뜨거운 물뿐인 종이컵이었다. 노인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그냥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종이컵이 조금 찌그러졌다.
"돈은 낼게."
"안 내셔도 됩니다."
"내야지. 공짜로 받으면 또 누가 말 만들 거 아녀."
노인은 동전 몇 개를 올려놓고 나갔다. 동전이 카운터 위에서 식었다. 민규는 그걸 한참 바라봤다. 백 원짜리 표면에 묻은 물기가 조명 아래서 흐릿하게 빛났다.
그날 밤, 인터넷은 깨진 컵 소리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초록색 머그컵을 망치로 쳤다. 쨍그랑. 손잡이가 떨어져 나갔다. 텀블러가 찌그러졌다. 스테인리스 살갗에 흠집이 났다. 회원 탈퇴 화면이 줄줄이 올라왔다. 사람들은 닉네임을 가리고, 포인트를 버리고, 적립 별을 지웠다. 별들이 모니터 속에서 하나씩 꺼졌다.
녹색 로고 위에는 빨간 금지선이 그어졌다.
민규는 기숙사 방에서 그 영상들을 봤다. 방은 좁았다. 젖은 양말 냄새와 컵라면 국물 냄새가 섞여 있었다. 창문 틈으로 자동차 바퀴가 물웅덩이를 가르는 소리가 올라왔다. 촤악. 촤악. 침대 밑에서는 먼지가 굴러다녔다.
회사 사과문도 올라왔다.
문장들은 반듯했다. 아주 깨끗했다. 다림질한 와이셔츠 같았다. 얼룩 하나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글자 사이에 피 냄새가 없었다. 병원 복도 냄새도 없었다. 장례식장 국화 냄새도 없었다. 팽목항의 젖은 바람도 없었다. 그냥 법무팀 프린터에서 막 나온 종이 냄새만 났다.
대표가 잘렸다는 기사도 떴다.
회장이 고개 숙인 사진도 떴다.
검은 양복들. 흰 셔츠들. 일렬로 놓인 마이크들.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이마들이 번쩍였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지만, 사진 속 바닥은 너무 깨끗했다. 구두 코에 먼지 하나 없었다.
민규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손바닥에 아직도 본드가 묻은 것 같았다. 그는 세면대로 가서 비누를 칠했다. 손을 문질렀다. 손톱 밑을 긁었다. 물이 하얗게 거품을 물고 흘러갔다. 그래도 손바닥 한가운데 탁 하는 감각이 남아 있었다.
다음 날, 민규는 출근했다.
매장 유리창에는 포스터 자국이 남아 있었다. 끈끈이가 먼지를 잡아먹고 회색 줄무늬를 만들었다. 누가 지나가다 손가락으로 그 위를 긁었는지, 유리에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기억해라.
매니저는 그걸 지우라고 했다.
민규는 물걸레를 들었다. 유리에 물을 뿌렸다. 분무기에서 나온 물방울들이 글자 위에 맺혔다. 기억해라. 글자가 흐려졌다. 그러나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손으로 문지를수록 더 넓게 번졌다. 회색 얼룩이 되어 유리 전체에 퍼졌다.
그는 걸레를 내려놓았다.
"안 지워져요."
매니저가 다가왔다.
"세게 문질러."
민규는 유리창 너머 거리를 봤다. 출근길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지나갔다. 누구는 커피를 들고, 누구는 휴대폰을 보고, 누구는 신호등 앞에서 발끝을 까딱거렸다. 세상은 멈추지 않았다. 버스는 오고, 지하철은 가고, 카드 단말기는 삑삑 울리고, 원두는 갈리고, 우유는 끓었다.
그런데 유리창 한가운데, 지워지지 않는 회색 자국이 남아 있었다.
햇빛이 그 자국을 통과했다.
매장 바닥에 희미한 글씨가 떨어졌다.
기억해라.
민규는 바닥에 비친 그 글자를 내려다봤다. 신발 밑창들이 곧 밟고 지나갈 글자였다. 물걸레 한 번이면 사라질 그림자였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또렷했다. 커피 냄새와 젖은 우산 냄새와 쇠로 된 기계의 뜨거운 숨 사이에서, 보이지 않던 것이 잠깐 몸을 얻었다.
민규는 앞치마 끈을 풀었다.
천이 허리에서 스르륵 빠졌다. 검은 앞치마가 손에 축 늘어졌다. 원두 가루가 묻은 천끝에서 쓴 냄새가 올라왔다.
매니저가 말했다.
"너 뭐 하냐."
민규는 앞치마를 접지 않았다. 그냥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탁.
이번에는 아주 조용한 소리였다.
하지만 민규는 알았다.
어떤 소리는 작아도 오래 간다.
어떤 소리는 유리에서 떨어져 나와 손바닥에 박힌다.
어떤 소리는 한 번 들으면, 평생 컵을 내려놓을 때마다 다시 들린다.